
지방선거날. 사전투표를 하고 대구 여행자클럽을 통해 전북 고창으로 당일 여행을 다녀왔다.
일정은 고창 청농원 라벤더 축제, 고창읍성, 선운사를 둘러보는 코스.
결론부터 말하면 아쉬움과 만족이 공존했던 여행이었다.
새벽 6시 대구를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들떠 있었다.
마치 소풍 가는 여고생들처럼 재잘재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간식까지 챙겨 먹으며
입이 쉴 틈이 없다.
여자들의 입은 말도 하고, 먹기도 하고, 참 신기한 멀티 능력이다.
버스 안은 벌써 소풍 분위기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전 9시 30분.
드디어 고창 청농원에 도착.
'넓게 펼쳐진 신비로운 보라빛 정원에서 향기로운 휴식을 만나보세요.'
그 문장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 신청한 여행이었다. 보라빛 정원을 기대했는데...
아이구, 이럴 어째 ㅠㅠ 폭삭 속았수다!!
라벤더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모습이었다.
성질 급한 몇몇 아이들만 먼저 꽃봉오리를 열고 있었다.
넓은 정원은 아직 초록빛이 더 많았다.
대신, 금계국이 환하게 웃어주고, 장미가 향기를 건네고, 개양귀비와 패랭이꽃이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주인공이 잠시 늦는 동안 조연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풍경.
그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뜨거운 햇살과 아쉬움을 핑계 삼아 청농원 카페로 들어갔다.
보라색 우산과 라벤더 소품들로 꾸며진 카페는 그 자체로 포토 존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반겨준 건 바로 라벤더 아이스크림.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입에 아쉬운 마음이 조금 녹아내린다.
고창 청농원 라벤더는 6월 중순쯤 방문해야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청농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의외로 꽃보다 포토존이었다.
솔암제 앞에 세워진 노란 폭스바겐. 그리고 보라색 의자.
만개한 라벤더가 있었다면 더없이 아름다웠겠지만, 없어도 충분히 예뻤다.
우리도 아쉬움을 사진 속 웃음으로 남겨두었다.
오전 10시 30분.
두 번째 여행지인 고창읍성으로 이동했다.
외침을 방어하기 위해 조선 시대에 축성된 고창읍성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윤달에는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3회 돌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 한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부녀자들의 답성(踏城)풍속이 남아있다.
성곽 둘레 1,684m로 소요시간은 30~ 40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에 하나이다.
옛 성곽을 따라 걷다 보니 돌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눈에 담는 동안 입으로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니, 정작 보려 했던 맹종죽림을 결국 지나치고 말았다.
시원하게 뻗은 대나무숲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가이드님이 알뜰살뜰 설명해주셨는데 ㅠㅠ
그래도 성곽 한 바퀴를 돌았으니 예부터 내려오는 말처럼 다리 건강에 조금은
도움이 되었겠지.
이날의 두 번째 아쉬움이었다.
오후 12시 20분,
마지막 여행지인 선운사에 도착했다.
점심은 자유식.
우리는 '뭉치네' 식당으로 들어가 산채비빔밥, 제육볶음, 파전, 더덕무침을 맛있게 먹었다.
첫 번째 아쉬움은 라벤더 아이스크림으로 달랬고,
두 번째 아쉬움은 맛있는 점심으로 달랬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뒤 선운사 경내로 향했다.
왼쪽에서는 도솔천 물소리가 흐르고, 오른쪽에서는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길은 초록빛 나무들이 가득해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도솔산 푸른 나무들에 둘러싸인 대웅전은 웅장하면서도 고요하다.
절이 주는 힘은 늘 신기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진다.
쌀을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가족들의 건강. 그리고 평범한 일상.
늘 그렇듯 소원은 거창하지 않다.
만세루에 잠시 앉았다. 산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그런데 또 하나의 아쉬움이 남는다. 도솔암에 가보지 못했다.
하루 동안 청농원, 고창읍성, 선운사를 모두 둘러보려니 시간이 부족했다.
선운사 입구 카페에서 복분자 에이드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버스에 올랐다.
하루가 짧아 더 아쉬웠던 고창 여행.
하지만 여행은 원래 약간의 아쉬움을 남겨야 다시 찾게 되는 법이다.
라벤더가 아직 만개하지 않았고, 맹종죽림을 보지 못했고, 도솔암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만은 없다.
오히려 다시 오고 싶은 이유가 세 개나 생긴 셈이다.
아마 여행은 그래서 좋은가 보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다음을 약속하게 만들어서.
9월 무릇꽃이 필 무렵, 선운사를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15:20 선운사 출발
고속도로휴게소 휴식 (15분)
16:30 대구 도착.
박도현가이드님의 매끄러운 진행으로 더욱 즐겁고 소중한 추억거리를 만들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