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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을 선암사, 낙안읍성, 다시 그리운 것들 쪽으로 ...(11/1 선암사 외) | 등록일 | 14.11.05 | 조회 | 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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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문화재도 하나 없는 선암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절집으로 들어가는 산길의 호젓함과 풍광, 그리고 선암사의 고풍스런 가람배치에 더하여 선암사의 해우소가 가지는 그리운 것들에 대한 아련함도 한몫 할 것이다. 비 온 뒷날, 촉촉하면서도 상큼한 가을 공기를 한껏 들이키며 올라간 선암사는 곳곳이 공사 중이었고, 다른 많은 관광객들과 어느 고승의 부도탑과 비석 제막식으로 인해 기대한 운치와 예스러움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선암사를 선암사이게 한 반원형의 석조 홍교(虹橋)인 승선교는 그대로 였고 계곡물 소리와 어우러져 더욱 빛났다. 그런데 승선교 아래로 내려가지마라는 가이드의 말은 앙꼬 없는 찐빵을 먹으라는 것과 같아 무시하고 다리 아래로 내려간 까닭은 승선교의 아랫쪽에 매달인 용머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용(龍)은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의 하나인데 이를 다리 아래에 조각한 것은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사악한 것들을 막기 위해서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까지 이런 조각을 남긴 다리 놓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물에 비친 승선교가 만드는 원융무애(圓融無礙)의 원(圓)과 다리 아래에까지 용머리를 장식한 장인들의 원(願)을 보는 것만으로도 선암사 기행의 반은 차지하지 싶다. 이어 찾아간 곳은 낙안읍성이었다. 해미읍성, 전주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 성읍 민속마을 등 아직도 옛모습을 간직한 곳들이 여러군데 있지만 그중에서도 옛 시골마을의 모습을 원형에 가깝게 간직한 곳이 아마도 낙안읍성이지 싶다. 성안에 들어서니 아주 먼 길을 에돌아 고향마을에 당도한 듯한 느낌이 앞섰다. 올망졸망한 초가집들, 맑은 샘물이 끊이질 않는 돌샘, 낮은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고샅길, 대나무와 싸리나무로 정성스레 엮은 바자울과 사립문, 처마 아래 매달린 시래기다발과 호박고지, 마당 한쪽의 손바닥만한 채마밭, 쿵쿰한 냄새가 나는 두엄더미와 그 두엄더미를 파헤치는 마당에 풀어놓은 토종닭들...... 오래 전의 기억조차 희미해지고,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춰버린 그리운 것들 쪽으로 다가갔다 돌아나오기가 아쉬었다. 그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주차장 한쪽에 마련된 장마당으로 갔다. 이미 우리의 식탁을 점령한 중국산의 위력은 낙안읍성이라고 비켜가지는 않았다. 근처 농가에서 가져온 감과 고구마와 무화과와 나물거리들이 몇몇 있었지만 많은 것들이 원산지 불명의 것들이라 사는 것이 머뭇거려졌다. 그런데 잡다한 가판대 한켠에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찐쌀이었다. 9남매 집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다섯 남매를 낳은 어머니가 해마다 추수 후에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만든 것이 찐쌀이었다. 군것질거리가 귀한 시골에서 그나마 손이 덜 가며 만들 수 있는 것이 찐쌀이었기에 어머니는 찐쌀을 만들었고, 서로 조금 더 많이 먹으려고 어머니 몰래 찐쌀 단지로 손이 가곤 했다. 아침부터 찐쌀을 먹느냐는 타박을 들으면서도 호주머니 가득 찐쌀을 채워 등굣길에 먹던 그 찐쌀의 구수함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맛이었다. 오는 내내 입안 가득 넣고 침으로 찐쌀을 불려 씹어 먹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 한 몸도 추스리기 힘든 어머니께 찐쌀을 갖다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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